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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 헝가리의 위엄을 만나다

체코 프라하 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부다페스트(Budapest)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8시였다.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역사 밖으로 나오니 이방인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동유럽표’ 하늘.
어디선가 잔뜩 몰려온 먹구름이 부다페스트를 뒤덮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부다페스트에 대해 갖고 잇던 우울한 감정은 노란색 트램이 달리는 시내에 들어서자 말끔히 사라졌다. 아르누보, 바로크, 네오클래식 양식의 건축물이 어우러진 이 도시는 유럽의 그 어떤 도시보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세체니 다리’.


영어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하다. 세체니 다리는 1839년에 짓기 시작해 10년에 걸쳐 세워졌다. 다뉴브(도나우) 강변에 가장 먼저 세워진 다리이자 다뉴브 강을 연결하는 8개의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이 다리를 만든 주인공은 헝가리의 정치가 이슈트반 세체니. 그의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도 기상 악화로 강의 건널 수 없었는데, 이를 계기로 세체니 다리를 만들었다.
세체니 다리 양쪽 끝에는 커다란 사자상이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자에게는 혀가 없다. 별명이 ‘혀 없는 사자상’인 것도 이 때문. ‘조각가가 깜박 잊고 혀를 만들지 않았다.’ ‘더 이상 싸우지 말라는 의미로 일부러 안 만들었다’ 등 의견이 분분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혀가 없으니 당연히 울지 못할 터. 그래서 헝가리 사람들은 ‘가능성이 없는 일’을 말할 때 종종 ‘사자가 울면...’이라는 문구를 인용한다.

부다페스트는 원래 하나의 도시가 아니었다. 다뉴브 강을 사이에 두고 각각 발전하던 부다(Buda)와 페스트(Pest)rk 합쳐져 만들어진 도시다. 인구는 약 200만 명으로 중동부 유럽해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다.
부다는 귀족과 부호의 영역, 페스트는 상인의 활동 무대였다.
부다는 고대 로마의 군사기지로 개발되기 시작해 1361년 헝가리의 수도가 되었고, 13세기 이후 헝가리 왕들이 거주했던 왕궁을 비롯해 역사적 유물과 건축물이 산재해 있다.
페스트가 도시로 형성된 것 역시 13세기 무렵 상업과 예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두 도시는 16~17세기에 터키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 지배하에 있었으나 1872년 합병해 하나의 도시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주변의 작은 도시들까지 합쳐져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래서인지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은 각각 서로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왕이 살던 부다 지역은 어딘가 중후한 분위기를 풍긴다.

가장 큰 볼거리는 야트막한 부다 언덕에 모여 있는데, 부다 성(왕궁)과 마차시 사원, 어부의 성채 등이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들이다.
부다 성은 13세기에 지었다. 전성기 시절, 빈과 함께 합스부르크 제국의 공동 수도였던 부다페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만신창이가 된다. 현재의 부다 성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것을 복구한 것으로, 고풍스럽고 우아하던 실내장식이 현대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성은 역사박물관과 국리박물관, 국립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왕궁 광장 앞에 위치한 희색 건물은 헝가리의 대통령 궁이다. 총검으로 무장한 근위병의 절도 있는 교대식이 눈길을 끈다.

왕궁 광장에는 헝가리 건국의 아버지 아르파드를 낳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새 ‘투룰’조각상이 있다. 이 광장은 부다페스트 도심을 흐르는 다뉴브 강과 세체니 다리,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의회 건물로 꼽히는 국회의사당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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