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박 혜 숙 (수필가) | ||
“니네 집 3층이잖어. 층계 나 못 올라 가.”
“업고 올라가면 되지.”
시집 온 지 37년이 되었지만 우리 엄마는 큰 딸네서 자본 적이 별로 없다. 평생 시집살이를 하며 사는 맏며느리라 사위 생일이고, 손녀 결혼식에 왔다가도 죄인처럼 다리 쭉 펴고 누워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가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 이제 얼마든지 자고가도 되는데, 층계 올라올 힘도 없이 늙어버린 우리 엄마! 젊었을 땐 식구들 수발드느라 어디 여행도 못 가고 딸네 가서 자고 오지도 못했다. 이제 엄마랑 해외여행도 갈 수 있고,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친정도 맘대로 갈 수 있건만 다리에 힘이 없고, 허리도 무릎도 아프다.
“엄마, 우리 고아 만들지 말고 오래 살아.”
“아이구. 난 환갑도 못살 줄 알았는데 벌써 여든 하고도 몇이여. 구신은 뭐하나 몰라. 나 안 잡아 가고.”
엄마는 생에 대한 애착이 없다. 작년 남편을 이천 호국원 도자기 유골함에 봉인한 후 찾아뵈면, 물끄러미 당신 들어갈 자리를 본다.
“네 아버지 외롭겠다. 내가 얼른 저 옆자리로 가야지.”
아버지가 환하게 사진 속에서 웃는다. 미남 아버지가 몹시도 그리운가보다. 하지만, 우리에겐 하나 남은 엄마가 더없이 소중해 6남매는 협심증이 있는 엄마가 어찌 될까봐 노심초사한다.
84번째 맞는 생신이 다가온다. 해마다 이 맘 때면 아파 비상을 걸고는 해서 올해는 내 생일 생짜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 봄부터 잡숫는 것을 토한다고 우울한 소식이 들렸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직감한다. 생신 전에, 옆에 남편 며느리, 밑에 자식 다 자르고, 6남매와 엄마 외삼촌 이렇게 피가 통하는 8명이 놀러갔다.
엄마는 남동생 옆자리에 앉아서 젊은 날 이야기를 쏟아내고 행복해하신다. 그렇게 운전을 하며 다니는 아들이 피곤할 텐데 밤이면 도통 잠을 못 잔다고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물었다.
남동생은 자초지종을 털어놓는다. 동업을 하는 후배가 돈 가지고 장난을 쳐 그러려면 나가라고 했더니, 이 달 보름까지 투자 금을 돌려주면 혼자 회사를 차리겠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한 회사라 긁어모을 돈은 다 끌어다 썼는데, 돈이 융통이 안 되고 약속한 날은 한 달도 안 남았다고 실토했다.
순간 나는 뜨끔했다. 지난 부처님 오신 날 절에서 부탁을 했던 것이다.
“누나. 우리 앞으로 된 집을 잡혀서 돈 좀 빼주면 안 돼?”
난 사정을 물어보면 마음이 흔들릴까봐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 생전에 그 집 건드리면 안 돼. 잘못되면 가실 데도 없고, 우리 6남매의 별장으로 쓰라고 자형이 터를 준 건데.”
그 집을 그새 잡혀먹었느냐고 남편에게 지청구를 먹을 일도 두려웠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꺼치랬구나. 난 괜찮아. 얼른 돈해 줘.”
“차라리 우리 6남매 지분으로 회사에 투자를 하면 어떨까? 웅자 뺀 이자를 우리가 물다 회사 잘되면 배당해주는 거로.”
여동생이 제의를 하고 그 자리에서 전화 상담을 하니, 바로 돈이 되는데 부족분도 그 동생의 신용으로 뺄 수 있었다.
돈을 꾸는데, 이자를 안내도 되니까 신이 난 제약회사 사장은 10%의 지분을 주기로 했다. 이제 확 핀 얼굴로 운전을 하며 여행은 더 즐거웠다. 엄마는 이게 자식과 하는 마지막 여행일 거라고 말해 우리를 가슴 철렁하게 하며 돌아왔다.
그런데, 그 후 회사의 매출이 정말 늘고 있다.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을 거라니까 긍정 마인드가 작용하는지 남동생의 회사는 하루가 다르게 번창한다. 배당금이 나오면 8명이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너희가 합심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좋아하는 엄마. 기분이 좋아지니 다리에 힘도 늘고 있다.
3층까지 올라올 힘만 붙으면 엄마와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 지나온 굽이굽이 아리랑 길을 함께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밤새 얘기할 그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
중부포커스 webmaster@jbfocus.co.kr
<저작권자 © 중부포커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청주 신천지자원봉사단, ‘효문화교육재단 이사장 감사장’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