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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체육대회’

단풍이 세상을 치장하는 계절이 왔다.

가을이 오고 개천절이 되면 어김없이 동문체육대회가 열리고, 올해도 주관 기수가 마련해준 관광버스를 타고 모교를 향했다. 24회 제자가 동문회의 총무로 중추 역할을 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7,8회에 이어 13회인 우리 5명이 앞쪽에 않자 가는데, 서로 소개를 하자고 하며 후배부터 인사해 올라왔다.
“동문님들 안녕하세요?” 박수가 요란하게 울린다. 제자들이 많이 타서 격려를 해주나 보다. “이렇게 해마다 고향을 동문들과 방문하니 생활에 활력도 있고 좋아, 오늘은 동생도 둘이나 데리고 왔습니다. 한참 살다보면 모든 게 시들하고 외로운데 이렇게 공식적으로 외간남자들과 여행을 하게 되어 즐겁습니다.”했더니 사회를 보던 제자가 “국어책엔 외간 남자라는 말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누구와 데이트를 하시겠어요?”라고 해서, ‘너희가 바로 내 외간남자다’라며 한 대 때려주었다.
20대에 모교에서 만나 선배선생으로 씨름하던 그들과 어울려 떠들다보면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커피를 끓여온 제자에, 고구마 옥수수를 삶아오고, 김밥을 나누어 먹으며 떠드는 차안은 어린 시절 시골학교 운동회와 똑 같다.

머리를 묶은 잘생긴 청년이 꾸벅 인사를 하며 ‘제가 누군지 알겠느냐?’고 한다. ‘낯은 익은데 이름은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나를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다’고 한다. 사연은 중학교 때까지 줄반장 한 번도 못했는데, 선생님이 주번 장을 시키고 팔뚝에 완장을 채워주는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단다. ‘그때 얻은 자신감으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주번 장은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을 시켜야 전교를 휘젓고 다니며 청소를 시키고 질서를 잡기 때문에 네가 뽑혔던 거’라고 했더니 얼굴 하나 가득 웃음이 넘친다.
교정에는 만국기가 휘날리고, 선배 후배가 어울려 신나는 경기가 열렸다. 우리 13회도 배구가 결승에 올라갔지만, 힘이 넘치는 후배들한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시의원인 주관 기수 회장이 와서 동생을 데려와서 반가웠다며 열심히 준비했는데, 부족한 게 많다고 하며 노래자랑 심사를 부탁했다. 역대 행사 중 음식이 최고 맛있고, 행사가 짜임새가 있다. 그리고 내빈 소개에 앞서 은사님을 소개하는 것이 참 좋아보였다고 칭찬해주었다. 셋째동생 혜영은 행운권으로 한우 3kg를 받았는데 내가 받은 것보다 더 기뻤다.

오늘 메뉴는 메밀가루에 어제 밭에서 땄다는 야채를 잔득 넣어 부친 빈대떡이 최고 맛있었다. 흑돼지 고기를 금방 잡아 냄새 안 나게 여러 가지를 넣고 삶아 무채와 곁들인 보쌈, 아욱을 넣고 끓은 올갱이국도 일품이었다. 고향 맛이 가득한 산해진미가 얼마든지 제공되었다. 먹는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천고마비의 계절에 조심하라는 옐로우카드를 받을 때까지 먹어댔다.
그리고 해마다 열리는 노래자랑이 시작되고 총동문회장님과 친구와 심사를 보게 되었다. 젊은 후배들이 역시 힘이 있고, 노래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기수마다 노래 잘하는 단골이 있는데, 이 자리에 해마다 나를 앉히는 것은 중복수상을 막기 위한 것 같다.

가능하면 20회 이후의 젊은 기수에게 상을 주려고 노력했다. 우리 13회가 나를 믿고 노래를 불렀지만 그래서 심사위원 기수는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고향의 품에 안겨 동문회를 하고 선후배와 정을 나누면 자신감이 생겨나고 삭막한 모래 위를 걷던 내 생활에 무언가 윤택한 기운이 충만함을 느낀다.
도회지의 이기심이 가득한 삶에서 받았던 상처치료도 하고, 잘난 사람이 많아 늘 눌려 지내던 자존심도 회복이 된다. 가을이 되면 더욱 쓸쓸하고, 허전한 때 고향 사람들과 어울리는 이 행사가 우울하던 일상을 탈출하게 한다.

그런데 마음 아픈 것은 시골 학교의 학생 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것이다. 군수님, 면장님과 점심식사를 하며 구체적인 고행의 실정에 대해 들었다. 79년을 정점으로 농촌 인구가 점점 줄고 있다고 했다. 당시 만 명이던 인구가 지금 삼천 명을 약간 넘고 있어서 어떻게 하던 이 인원을 사수하자고 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출향민들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했다.

동문회를 하는 중학교도 내년까지만 입학생을 받고, 그 다음부터는 5개 중학교를 합쳐 새로운 한 개의 중학교를 만들고, 통학 버스를 운영하기로 결정이 나 있다고 한다. 다행히 고등학교는 학생 전원 기숙형학교로 인가가 나 14억을 들여 짓기 시작하여 학교이름은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초등학교도 폐교가 되고, 중학교에도 후배가 생기지 않는 농촌의 현실에 비감이 서린다.

몇 안 되는 학생을 유지하려면 국고가 지나치게 낭비되고, 운영하기에도 복합적인 문제가 많다. 서운하지만 방향은 잘 잡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모교의 운동장에서 제자들과 경기도 즐기고 옛날이야기를 나누며 보낸 소중한 시간 덕분에 생존경쟁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다시 싸울 수 있는 에너지 충전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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