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군 학산면 박계리 마을 입구에‘독립군 나무’로 불리는 나무가 있어 화제다.
한가로운 농촌 주택가에 서 있는 키 15m, 둘레 10m, 수령 350년(보호수 지정: 영동-43호, 지정일자: 1982년 11월 11일, 위치: 영동군 학산면 박계리 1366번지)의 나무로 뿌리서부터 두 그루의 나무가 붙어서 자란 것처럼 두 개의 줄기가 뻗어 나와서, 느티나무로서는 독특한 생김새를 가진 나무다.
주위에 단을 쌓고, 평상을 놓아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는 정자나무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독립군’의 긴박감을 느낄 수 없고, 그저 평안함이 배어나올 뿐이다.
독립군 나무라는 별명은 일제 때 이 나무가 당당하게 수행해낸 역할에서 비롯됐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어려워했던 일 가운데 하나는 조직 구성원간의 원활한 연락이었다. 특히 서울과 남부 지방을 연결하는 영동 지역은 중요한 통로였다. 당시 영동은 서울과 영·호남을 잇는 중요한 통로였다.
일본인 감시를 피해 이 지역을 통과하는 일은 무엇보다 전국 규모의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데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걸 잘 아는 일본 순사들도 영동지역의 순찰과 감시는 어느 지역에서보다 철저했다.
주민의 도움 없이 독립운동가들이 이 지역을 통과하는 건 불가능해서 여러 방법을 모색하던 끝에 마을 사람들이 궁리해낸 묘책은 나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일본인 감시자들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고 그 결과를 나뭇가지에 암호로 표시하기로 했다.
허름한 헝겊을 느티나무 가지 끝에 걸어서 감시 상태를 알리는 방법이었다. 먼 곳에서도 눈에 잘 띌 만큼 높지거니 자란 나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은밀하게 나뭇가지에 헝겊을 걸었고, 산에 숨어서 마을 사람들의 신호를 숨죽여 기다리던 독립운동가들은 나뭇가지에 걸려 나부끼는 헝겊을 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특히 3·1운동 때에 이 나무는 서울에서 남부지방으로 독립선언문을 전달하는 데에 결정적인 공로를 세웠다.
광복 이후 사람들은 이 나무를‘독립군 나무’또는‘독립투사 느티나무’로 불렀다. 사람이 할 수 없었던 일을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크기로 자란 큰 나무이기 때문에 능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이 나무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그 당시의 독립정신은 지금도 이 마을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최홍주 기자 webmaster@jb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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