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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학교(총장 유선규)는 29일 유족 및 대학관계자, 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학 컨벤션센터 동상앞에서 설립자이신 월강 故 오범수 선생의 18주기 추도식을 거행했다.
청학원(충청대학교) 설립자이신 월강 오범수 선생은 1919년 9월 27일 충북 청원군 현도면 우록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고려조의 명문인 보성 오씨 부위공 (숙공) 의 16대손으로 엄격한 부친(연성공)과 자애로우신 모친(교하 노씨) 사이에서 태어나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한학을 수학하였다.
부강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동경에 있는 창평중학을 거쳐 일본대학 공학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해방되던 해인 1945년 3월에 졸업하였다. 선생은 일본 유학 시 첨단 기술의 공대 계통 학문에 한국학생들의 대학진학을 금지하는 것을 보며 공학의 발전이 국가발전의 토대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는 충청대학 설립의 근본 동기가 되었다.
월강 선생께서는 해방과 함께 고국에 돌아와 군정청 교통부 해사국에 잠시 근무하며 인천항 건설 등 토건 및 건설 분야의 기술직에 종사하다가 해군 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의 권유로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948년 2월에 특 3기로 졸업하였다. 소위로 임관한 후 해군 시설부장 및 군항건설단장으로 복무하면서 6·25때 조국 수호의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군항 건설의 책임자로서 해군사에 길이 남을 군항건설에 참여하여 수많은 공훈을 남겼다. 1954년 예편하여 (주)대한건설공사를 창립하고 대표 이사로 항만공사 등 토목 및 항만건설업에 전력하였다.
선생께서는 1958년 정계에 투신하여 정치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였다. 1958년 자유당 청원군당 위원장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하여 그 해 5월 청원군 갑구에서 제 4대 국회의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어 의정생활을 시작했다. 자유당 집권당시인 1960년 3·15 부정선거에 임하여 경무대에 들어가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부정선거를 만류한 사건은 너무나 유명하다. 또한 4·19 혁명 후 1960년 7월 29일 초대 참의원 의원으로 충북에서 당선되었다. 자유당이 몰락하던 시기에 오로지 자유당을 사수했던 선생의 행적은 오늘날 철새 정치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5·16 혁명으로 인하여 군정이 실시되자, 군정이 4·19 혁명으로 이룩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판단하고 군정반대투쟁위원회 조직에 참여하여 사무총장직을 맡아 군정에 대항하였다. 이후 국회의원 동우회 상임 부회장으로 취임하여 전직 국회의원들의 친목활동에도 많은 활약을 하였으며 생존시에는 라이온스 활동 등 많은 봉사 활동과 각종의 사회활동을 통하여 왕성한 활력을 과시하였다.
교육이 백년지대계임을 인식한 선생께서는 1982년 대학설립허가를 얻어 1983년 개교하기에 이르렀으며 타계하기까지 16년간 충청학원 이사장을 역임하시며 대학 발전의 기초를 다지셨다.
최홍주 기자 webmaster@jb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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