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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북부보훈지청(지청장 윤형중)은 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선정한 2022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안경근·이덕주·최흥식 선생을 지역민에게 알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안경근·이덕주·최흥식 선생은 일제강점기 한인애국단에서 일본군 고위 관료 처단을 위해 군사교육과 의열투쟁을 주도했다.
한인애국단이란 1920년대 중반 이후 독립운동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침략의 원흉인 일본군 주요 인물을 처단하기 위해 1931년 김구 선생 주도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결성된 단체다.
안경근 선생은 안중근 선생의 4촌으로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으며, 1918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했다. 선생은 1926~27년(황포군관학교 교관), 1934년(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황포군관학교 전신)에 걸쳐 조국 독립을 위해 꼭 필요한 군사인재를 양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선생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은 한국광복군과 조선의용대 창설의 핵심 세력이 되어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에서 군사위원회를 조직(1937년 7월), 선생은 군사위원으로 선임되어 항일운동을 펼쳤다.
이덕주 선생은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20세에 조국 독립을 위해 단신으로 상하이로 망명했다. 1932년 3월 “조선총독을 처단해야 한다”는 김구 선생의 지령을 받고 황해도 신천에 도착했다. 그러나, 유진식과 함께 조선총독 처단 의거 준비를 하던 선생은 신천경찰서 경찰에 의해 체포, 취조 중 조선총독 처단 계획이 발각되면서 의거는 불발됐다. 선생은 1932년 7월 해주지방법원에서 ‘살인예비, 치안유지법, 총포 화약류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 받았다.
최흥식 선생은 “1932년 5월 26일부터 30일까지 리튼(Lytton) 조사단이 대련에서 현지 조사 일정이 있는 만큼, 국제적인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대련에 있는 관동군 사령관, 남만주철도 총재 등 일제 고위 관료를 처단해야 한다”는 김구 선생의 지령을 받았다.
선생은 1932년 5월 26일 오후 7시 40분, 리튼(Lytton) 조사단 일행이 대련역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확인, 대련으로 나오는 관동군 사령관과 남만주철도 총재를 유상근과 함께 처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선생이 대련의거 준비 과정에서 중국 상해로 보낸 전보를 의심하여 수취인(곽윤)을 확인한 뒤, 관동청에 발신인 체포를 요청하면서 거사일 이틀 전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 의거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선생은 대련법원에서 징역 10년 형을 선고 받고, 여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안경근 선생에게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이덕주 선생은 1990년, 최흥식 선생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
강영식 기자 news@jb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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