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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독립운동가, 박건병⋅강경선⋅배천택 선생 선정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 결성을 위해 주도적 활동
▲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포스터

충북북부보훈지청(지청장 어문용)은 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선정한 11월의 독립운동가로, 1920년대 중국 북경과 상하이 등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통합한 단체인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이하‘촉성회’)결성에 참여한 박건병·강경선·배천택 선생을 지역민에게 알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강원도 김화 출생(1892년)의 박건병 선생은 1919년 5월 서울에서 결성된 임시정부 지원단체인 대한독립애국단 소속 강원도 철원군단(鐵原群團, 일명 철원애국단)에서 학무국장으로서, 임시정부를 선전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벌였다.

1927년 북경에서 관내 촉성회 연합회가 결성되자 15인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28년 5월 만주에서 전민족유일당 조직 촉성회가 개최되었을 때 북경대표로 참석했다.

1891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강경선 선생은 1920년 12월 상해대한인거류민단(上海大韓人居留民團)의 간사로 활약했고, 1921년 11월 대한적십자회에서 상의원(常議員)에 선출됐다. 이후 중국 안동현(安東縣)에 있는 이륭양행을 통하여 국내 정보를 수집해서 임시정부에 연락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북경지역에서 한국유일독립당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자, 상하이지역에서도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민족주의자들이 좌우합작을 위해 노력하는 등 1927년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 설립에 기여했다. 선생은 촉성회에 참여하여 25명의 집행위원 중에 한 사람으로 선출되어 독립운동의 활로 모색을 위해 적극 노력했다.

경북 대구 출생(1892년)의 배천택 선생은 1919년 중국 류하현(柳河縣)에 있는 군정부(軍政府)가 서로군정서로 개편될 때 참여했고, 1923년 1월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서로군정서의 3인 대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가, 비서장(祕書長)에 선출됐다.

또한, 1926년 7월 북경에서 북경촉성회를 조직할 때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창립선언서를 기초하였고, 1927년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 결성에 참여하여 15인의 집행위원 중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5인의 상무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박건병·강경선·배천택 선생은 중국지역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하나 된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정부는 이러한 공훈을 기리기 위해 박건병 선생은 1993년, 강경선 선생은 1995년 각각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배천택 선생에게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강영식 기자  news@jb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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